본문 바로가기
여행/2008년 유럽 자전거 여행

유럽 자전거 여행기 14 (목장에서 하룻밤)

by freewheel 2016. 6. 23.

 

 

 

 

 한참을 오르다 보니 양쪽으로 산꼭대기에 성들이 있다.

예전에 이곳이 프랑스에서는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음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 밑에 예쁜 집이 있어서 무섭지는 않지만

왠지 자전거 타고 가는 나를 궁사가 노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올라 산을 하나 넘었는데 또 다시 마을이다...

 이거...도대체 얼마나 올라가야하는 걸까?

 

이 때가 4시 30분 쯤이어서 이제 슬슬 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 오늘 목표로 했던 곳은 20km 정도가 더 남았고...ㅠㅠ

 

좋다~ 어쨌든 이 산은 넘고 보자...

 

 

 

 

방금 지나쳤던 마을을 내려다보다...

 

산꼭대기에 있는 성인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니 한참 아래다...ㅜㅜ

 여기서부터 경사는 급해지고 비는 굵어지고, 온 몸은 비에 젖어

몸은 추워지고... 집들도 없고 숲이거나 들판이라

급하게 텐트를 칠 곳도 없다.

 

과연 오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비 안 맞는

지붕만이라도 있는 곳에 자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만 가면 편히 잠잘 집이 있는데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어디서 잘 것인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 지 걱정하게 된다.

 

편히 잘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1시간을 비를 맞으며 산을 올라서니 다행히도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다...ㅜㅜ

그래도 작은 마을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비오는 날이라 그런지 마을이 너무 조용하다...

아무 집이라도 사람이 보이면 잠 좀 재워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뒤에 보이는 언덕위 집에 가서 무작정 노크를 했다.

 

부끄럽다 할 정신이 없었고

추위와 비를 피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커다란 개와 아주머니, 아저씨가 나오셨다.

 

"I'm traveling by bicycle and I'm going to Swiss. But It's raining and I'm cold...ㅜㅜ

 (저 자전거 여행중이고 스위스 가는 길인데 비가 오고 추워서요...)

Can I sleep in your garage???"라고 얘기했다...

 (차고에 잘 수 있어요?)

 

내 자전거와 행색을 보더니 안된다고 한다....ㅠㅠ

 

아... 빗 속에서 어디서 자야하나...

 

어쩔 수 없이 뒷 집으로 갔다.

다행히 불이 켜져있고 식사 중인 것

같은 집이 있어 노크를 했다. 똑같이 얘기를 했다.

 

그러더니 중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그 집 아이가 나오더니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하는게 아닌가? 여기는 프랑스..

영어가 통할 것 같은 생각에 "Yes, I can~!!!" 이라고 외쳤는데...

 

그 뒤로 영어를 못한다.... 할 줄 아는 영어가 그게 다였던듯...ㅜㅜ

 

할 수 없이 차고를 가리키며 두 손을

 모아 자는 모습으로 자도 되는지 물었다... 그런데 안된단다...ㅠㅠ

 

대신 아저씨와 아이들이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보고

 

"Big house OK?"라고 물어본다. Big house라는 얘기에 무조건

 OK라고 했다. 비만 피할 수 있으면 어디든 어떠랴~~~

 

추울텐데 커피 마시겠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얘기하며 얼른 Big house로

 가자고 했다~~~  그러더니 아저씨가 좀 가야한다며 차를 타시더니

"Follow me~" 하신다~~

 

아자~!!! 오늘 비 안 맞으며 잘 수 있겠다~~~!!!

 

 

 

 

 

 

자동차로 앞서 가시는 아저씨를 기쁜 마음으로 쫓아 갔다...

 얼마 안가서 아저씨 말대로 정말 큰 건물이 있고

거기에 차를 세우신다...

 

Big House는 바로 헛간이었다....

 

사실 비를 맞아 너무 추웠고 해는 져서 어두웠기 때문에

 이곳에서나마 비를 피해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고마울 뿐이었다...

 

여행 기간 중 가장 열악했지만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잠자리이기도 했다...^^

 

 

 

 

 

헛간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엄청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곳에 아저씨께서 텐트를 치면 될 것 같다고

 하셨으나... 내가 보기에 저기에 텐트를 친다면 비에 젖은 텐트에

지푸라기들이 다 달라붙을 것 같았다... 거기다 나도 온 몸이 젖어

있어서 텐트를 치려고 하다보면 온 몸에 지푸라기가 뭍을 것

같았다...ㅠㅠ

 

그래도 아저씨께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여기서 편하게 맘껏 자라고 하셨다...ㅜㅜ

 

사진으로 보여 줄 수 없는 축축함, 퀘퀘한 냄새, 어두움, 지붕을

두드리는 비소리... 처량한 신세를 탓하기 전에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룸메이트

창고 안에 있던 커다란 트랙터...

 너무 추워서 트랙터 안에 들어가서 문 닫고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자세가 영 불편 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래도 밤새 내 옆에서 나를 지켜 주었다......^^

 

 

 

 

 

헛간 입구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짐을 풀기 전에 조금이라도 씻고 싶어서

아저씨께 Water? Water?라고 하면서 물 마시는 시늉을 했더니

우측에 보이는 저 작은 문으로 가시면서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냥 창고인줄 알고 따라들어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문 뒤에는 뭐가 있을까?

 

 

 

 

 

따라들어갔더니...

 

이렇게 소들이... 양쪽에 많았다...ㅜㅜ

어쩐지 냄새가 많이나더라...

 

소들에게 물을 주기 위한 수도꼭지를 틀어보이시면서

"Water~~!!" 라고 말씀하시던 아저씨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쭈어보았다.

Toilet? Toilet? 그랬더니....

손을 펼치시며 "Anywhere~!!"라고 하신다....ㅜㅜ

 

몇시 쯤에 잘거냐는 아저씨 물음에

보통 9시에 잔다고 했다.

 

아저씨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아저씨는 잘 자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그냥 바닥에는 지푸라기 때문에 텐트를 못 치고

커다란 수레 위에 공간이 조금 있어서

여기에 비닐을 깔고 매트를 깔았더니

충분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비를 피할 수 있고, 텐트를 치지 않고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온 몸이 젖어서 씻고 싶었지만

외양간에 들어가서 수돗물에 잠깐 세수만하고

빗물과 흙에 더러워진 다리를 씻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만 닦아내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잘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그래도 따뜻해서 너무 좋았다.

 

저녁을 만들어 먹으려다가

지푸라기들이 가득한 헛간에서

불을 잘못 사용하면 큰 불이 날 것 같아서

내일 점심 때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빵 1개와 우유로 저녁을 대신했다.

 

저녁으로 맛있게 먹으려고 오늘 아침에 샀던 햄, 감자 샐러드...

따뜻한 밥과 미역국 생각이 간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침낭으로 들어가서 손전등 불빛으로 성경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나니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빗소리, 냄새, 추위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

 

아저씨와 두 아들이 왔다. 시계를 보니 9시였는데

잠들 기 전에 무슨 할말이 있으신 듯 했다.

 

아저씨께서 영어를 거의 못하셔서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내일도 계속 비가 오면 여기 Big House에서

며칠 더 있다가 가도 된다는 말씀이었다....

 

겉으로는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지만...

속으로는 내일 아무리 비가 억수같이 오더라도 떠날 거라고 다짐했다....^^

 

 

 

 

아저씨께서는 나의 잠자리를 둘러보시고는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호일로 싼 뭔가를 주시면서

잘 자라고 얘기하셨다.

호일을 풀어보니 빵, 치즈, 바나나, 사과가 있었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께 내 얘기를 했더니 갖다 주라고 하셨단다...^^

 

바나나만 먹고 나머지는 아침에 먹기로 했다.

 

아저씨께서 가시고 나서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거기다 소들이 어찌나 소리를 많이 내던지...

울음소리, 쇠사슬이 철커덕 거리는 소리, 소 이빨가는 소리...ㅜㅜ

 

'저 육축소리에 아기 잠깨나~ 그 귀하신 몸이 우시지 않네~'라는

찬양이 생각나며 예수님은 이곳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태어나셨을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래도 소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았서 좋았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이 들었다...

 

 

 

 

 

☆ 오늘 달린 거리 : 93km(누적거리 523.2km)

★ 오늘 지출액 : 7.14유로